난 논술학원에서 두 번 일해 봤다.
한 번은 서울 삼성, 강남, 개포, 분당 지역 이었고, 두번째는 제주 노형 지역이었다. 서울에서는 내가 학생집으로 가는 1~4명 소규모 그룹지도 형태였고, 제주는 학원으로 아이들이 오는, 초등~고등학생까지 최대 15명 그룹지도였다.
첫 논술지도 경험은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가 될 목적으로 시작한 밥벌이었다. 아이들도 가르치고, 책도 읽으면서 차츰 독립만세를 꿈꿨었다. 새로 온 '어린(그땐 나도 어렸어.)' 선생은 기존의 노련한 선생님과 비교 당할까봐 열심히 했고, 아이들 결과물도 꽤 성과가 있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좋아해 주었다. (원래 아이들은 어린 얼굴을 좋아한다.)
그렇지만 여유 시간이 전혀 없었고,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읽어야 하는 책들은 독서라기 보다는 숙제였다. 내가 살던 은평구에서 강남, 분당까지의 엄청난 이동량, 그에 비해 최저 임금에 미치지 못하는 소박한 벌이가 회사로의 회귀본능을 자극했다.
어느 날, 내 그런 행보를 마땅치 않게 여긴 엄마가 감기에 걸려 골골거리던 나에게 던진 한마디, '넌 언제까지 그럴거니? 시집도 안가고, 회사도 안 다니고.......' 아플 때 후벼 주시는 모친. 혼자 사는 사람은 아프면 서러운데, 가족과 살면서 저러면 비참하다.
난 확신 없던 프리랜서의 길에 기가 꺾이고, 다시 쉬운 선택을 했다. 분기탱천하여 당장 대기업에 입사(어찌 어찌 기회를 잘 잡았다.)하고 청약통장에 가입했다. 그때 엄마의 한마디는 청약통장만 남긴 채 이후로도 십년쯤 내 일에 정착하지 못하고 적성에 안 맞는 회사생활을 이어 나갔다. 그때 내 생각은 '쌀 떨어지면 애들 가르칠까, 애는 못 가르치겠네.'였다.
시간이 한참 지나 제주로 이주를 결정했다. 프리랜서 5~6년 만에 힘들다는 주간 연재도 하고, 강연, 관공서, 방송국 등 일이 어느정도 자리를 잡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약간은 우발적인 면도 있었지만 한번쯤 인생에서 어쩔 수 없이 물려 돌아가는 고리를 끊을만한 시점이었다. 더 어렸으면, 더 겁이 없었으면 더 먼나라로 옮기고 싶었지만 겁쟁이인 내가 택할 수 있는 최선의 해외는 제주였다. 연고자, 친인척 아무도 없는 낯선 섬으로 이주를 결심하니 한 달이 멀다하고 드나들던 제주가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쌀이 떨어지진 않았지만 내 맘 속에 쌀은 이미 바닥 난 상태였다. 제주 가서 뭘 하고 살지? 당장 누가 나에게 일을 주나?
내가 할 수 있는 건 논술지도 였다. 이주 결심 이후 서울의 큰 논술학원 회사에서 교육을 받고, 꽤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도 하고, 간단히 실습도 했다. 그렇지만 제주에 와서 그걸 써 먹지는 못했다. 서울 쪽 일이 계속 밀려들어 일주일에 한번씩은 육지를 오가느라 바빴다.
그런데 다시 기회가 왔다. 지인의 소개로 주말에 알바를 하게 되었다. 제주에 이주하고도 도민을 접촉할 기회가 별로 없었던 나는 다른 이유로 구미가 확 당겼다. 육지(제주에선 이렇게 말한다.) 일도 차츰 정리가 될 것이고, 나도 이 지역사회에 적응해야 할 의무가 있다 생각하는 바 사람들도 사귀고 지역문화도 배우고 싶었다. 그렇게 6개월쯤? 아이들 논술지도를 했고, 의외의 아이에게서 발견하는 창의력, 가능성을 보고 그 재능에 드라이브를 걸어주는 재미도 쏠쏠했다.
그러나 사사로운 운영 규칙을 미리 알려주지 않고 사후에 호통을 친다던가, 시간표로 물 먹이는 등 실장 선생의 텃새가 정말 짜증나고 회식 때마다 강압적으로 술을 권하는 원장, 때가 어느 땐데 '집합' 분위기로 각 잡고 모든 소주를 원샷으로 받아 먹고 노래방까지 이어지는 원장님 딸랑딸랑..... 분위기가 갖쟎아서(원장과 실장은 절친..ㅎㅎ) 짧은 직장생활 마무리했다. 내가 나이 이야기까지는 안하려고 했는데 씩씩...... 원장은 나보다 어린 와중에 사장이라고 나포함 모든 직원에게 예외없이 이런 꼰대 짓을 했다. 아니 자신보다 늙은 나를 권위를 이용해 놀려 먹는 재미를 즐기는 것 같기도 했다.
물론 이게 다는 아니고, 더 큰 문제가 있었다. 한참 디베이트 수업이 뭐 대단한 사고력 수업인냥 영어학원, 논술학원 할 것없이 열풍이었던 때에 논술이나 토론 마저도 어떤 공식을 만들어 점수를 주고 말싸움의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내 비위에 맞지 않았다.
때론 토론 주제가 아이들 가치관에 상당히 반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제비뽑기를 해서 입장을 나눈다. 그리고 그 옳지 않은(?) 주장 편에 서게 되는 아이는 악마가 되어 논리를 펴 나갔다. 어쨌든 그 게임에서는 말싸움에 이기는 아이가 점수를 받는다. 오히려 남들이 다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보편적인 가치를 뒤집을 수 있으면 정말 대단한 승자가 된다. 살인을 옹호해도 토론에서 기선을 잡으면 그 아이가 점수를 받는다.
가끔 정치 청문회나 100분 토론 같은 걸 보면 파렴치한 정치군들이 속을 부글부글 끓게 만드는데, 마치 그 판을 보는 것 같았다. 토론의 기술 중에는 '말을 끊어라.' , '대답하지 말고 무시하라.' 같은 것도 있는데, 이건 토론이 불리할 때 치트키처럼 쓰인다. 아이들은 토론 수업을 통해 상대의 말을 무시하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아이들은 뭔가 써야 하는 글쓰기는 싫어하는 반면 토론 수업을 좋아해서 시간표와 관계없이 늘 토론을 하자고 졸랐다. 디베이트를 통해 '합법적으로' 신나게 싸울 수 있으니, 한바탕 말싸움을 하며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갔다. 한편 그렇게밖에 풀 데가 없는 아이들이 가엽기도 하지만, 과연 아이들이 '이건 토론일뿐이야.'라고 가치판단을 할까? 난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른이나 아이나 환경에 적응한다. (참고로 이상한 소리 하는 정치인들 다 좋은 대학 나와 검사, 변호사, 의사 하던 엘리트 들이다.) 그런데 이걸 내가 가르쳐야 한다고?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만 하자 할 수도 없고, 선택해야 했다. 나 스스로 '고지식한 사람'으로 정의하고 손을 놓기로 했다. 간만에 조직생활도 신선했고, 헤어지기 아쉬운 '제자'도 몇명 생겼지만 더 할 수는 없었다.
이 밖에도 두 번의 논술지도 경험을 통해 시스템화된 논술학원의 맹점을 몇가지 발견했다. 그리고 내가 의외로 아이들 가르치는 데 소질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다만 성적 따기 글쓰기가 아닌 평생의 무기를 얻고자 하는 학생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분명해졌다.
'논술'이라는 이름이 아주 맘에 들지 않지만 여튼 '논술'이 학생 글쓰기의 통용어가 된 듯하다. 그래서 아이 '논술'을 가르치고 싶다고 문의하는 학부모가 가끔 있다. 나는 '국어 점수와 관계없이 글을 쓸 겁니다. 괜찮습니까?'라고 질문한다.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동의한다. 당장 국어 점수 때문에 가르치겠다는 거 아니다.' 라고 대답한다. 그렇지만 내 질문이 반복되면 학부모는 갈등하기 시작한다. 그래도 의지가 확고한 부모님들께는 '아이가 정말 하고 싶어합니까?'를 거듭 물어본다. 대부분 여기서 포기한다. 어떤 학부모는 요즘 핫한 글쓰기 선생과 그 저서를 슬쩍슬쩍 투척하며 내가 아나 모르나 시험하기도 한다. 나는 속으로 답한다. '나를 시험하시는군요, 그 전에 당신은 땡입니다.'
하여 아이와 글을 쓰고 나누며 함께 성장하는 시간을 만들고 싶지만 그런 기회가 좀처럼 오지 않는다.
나는 기본적으로 논술학원은 반대하는 입장이다. 그렇지만 아이들이 글쓰기를 하면 정말 인생이 풍부해질 것이다. 모순은 사교육이 이렇게 발달한 나라에서 학원이 다 똑같다는 점이다. 독서와 글쓰기를 가르치는 학원, 즉 논술학원에 대한 대안이 마땅치 않다. 인적자원이 수도권에 비해 전적으로 부족한 지역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아이를 논술학원에 보낼 지에 대해 문의하시는 학부모에게는 결정대로 하시라고 한다. 내가 당장 그분들에게 대안을 마련해 드릴 수도 없고, 내가 하지 말란다고 안 하실 분들이 아니다. 다만 나에게 확인을 받고 싶었을 뿐이다.
그렇지만 내가 꼭 덧붙이는 말은 너무 오래 보내지는 마시라. 이다.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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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 다음 편에 계속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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