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글

시작은 시잘일 뿐, 첫문장은 소멸됩니다.

빵작 2022. 4. 1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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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이 반이다.'

 

좋은 말이다. 시작하는 사람에게 큰 희망을 주는 말이다. 맞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글쓰기에서 시작은 그냥 시작이다. 아니, 시작인데 시작도 아닌 경우가 많다. 시작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글에서 첫문장을 시작이라 정한다면? 음...... 그 시작은 엄청난 실망을 안겨줄 것이다.

물론 첫문장은 중요하다. 첫문장 쓰기에 대한 책도 나와 있다. 각종 썰도 존재한다.

- 첫문장을 짧게 써라

- 첫문장에 5w1h를 담아라

- 매력적인 첫문장을 써라

- 첫문장에 암시를 넣어라

 

글의 종류에 따라 첫문장 가이드도 많다. 아 머리아파. 이러니 시작도 전에 글쓰기를 포기하지.

 

내가 권하는 방법은

- 첫문장은 1초라도 빨리 써라

 

첫문장은 그냥 좌표다. 여기서 '좌표'란 뭐 철학적인 대단한 뜻을 포함하고 있지도 않다. 그냥 글쓰기의 와꾸라고나 할까. 여기서 시작한다고 표시하는 꺽은 괄호 같은 것. 그림을 그릴 때 정하는 중심선 같은 것이다. 그림에서 중심선은 중요하지만 그게 중요하다고 완성 그림에 중심선을 남겨두는 바보는 없다. 마찬가지다. 글에 있어 시작 문장은 중요하지만 결국 사라져 버릴 것이다. 그럼 첫문장은? 나중에 고쳐 써질 예정이다. 난 그동안 수천 편의 글을 썼지만 첫문장을 처음 그대로 쓴 적은 거의 없다.

 

이쯤에서 첫문장을 정의해 보겠다.

- 첫문장은 마중물이다.

 

'마중물'이라는 표현을 쓰자니 오래된 사람 느낌이 팍팍 드네. 옛날 옛적 동네마다 혹은 집집마다 펌프라는 게 있었으니 손잡이를 가열차게 눌러(이걸 펌프질이라 하지) 지하수를 끌어 올리는 시스템으로 이게 가정용 식수였던 우물 다음단계가 아닌가 싶다. (펌프를 안다고 내가 펌프세대는 아니니 어린 동생들아 함부로 날 정의하진 말거라.) 어쨌거나 지하수를 끌어올리는 펌프질을 하려면 펌프 머리(?)에 물을 약간 부어줘야 하는데 이게 마중물이다. 그러니까 물을 쓰기 위해 필요한 물이라 할 수 있겠다. 물 한바가지 정도를 부어 펌프질을 하다보면 엄청난 양의 물이 뿜어져 올라와 그 물로 밥도 해 먹고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하고 가정에서 필요한 물을 다 끌어다 쓴다. 다시 글 이야기로 돌아오면 첫문장은 글을 쓰기 위한 마중물 같은 거다. 마중물만으로는 빨래나 밥을 할 수 없듯이 첫문장만으로는 할 수 있는게 별로 없다. 그렇지만 꼭 있어야 하는 것이긴 하다. 왜? 시작을 해야 하니까.

그렇다고 첫문장의 가치를 폄하하려는 건 아니다. 첫문장은 결국 아주 중요해 질 예정이다. 단 고쳐 썼을 때 말이다.

내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처음부터' 첫문장에 너무 집착하지 말자는 거다. 시작점에서 짧게 쓰지 못할 까바, 매력적이지 않아서, 암시나 정보가 없어서 쓰기를 주저하고 있다면 헛고생하고 있는 중이다. 어차피 없어질 문장에 힘 빼지 말고 편안하게 시작하자. 먹선생들의 먹언 중 '부먹이냐 찍먹이냐 싸울 시간에 하나라도 더 먹어라.'가 있다. 마찬가지로 첫문장이 이러니 저러니 따질 시간에 1초라도 빨리 시작하자. 그래야 나중에 고쳐 쓸 에너지를 아껴둘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글쓰기의 시작은 '고쳐쓰기'이다.

많은 사람들이 '공들여' 쓴 초안에서 멈출 때가 많다. 그래서 '글을 잘 쓰고 싶은데,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어요.' 라는 자기고백들을 하는 거다. 글을 잘 쓰기 위해 글감 잡는 법을 배우고, 환경을 만들고, 독서를 한 후, 글을 쓰지만, 정작 쓰는 단계에서 방전하는 헛수고를 하고 있다.

 

"당신 글이 쓰레기 같아요."

 

(침대에 누운 그, 하품을 쩍 하며 태연하게)

"괜찮아, 일곱 번쯤 고쳐쓰면 돼." .

 

내가 좋아하는 독설의 대가 조지 버나드쇼의 유명한 일화이다. 조지 버나드쇼는 극작가, 소설가, 비평가이며 묘비명 '우물쭈물하다 내 이렇게 될 줄알았다 .' 의 주인공. 내가 진짜 좋아하는 문장이다. 아주 위트가 넘친다니까.

여기서 중요한 건 노벨문학상을 받은 대문호의 초안도 '쓰레기' 소리를 들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우리 같은 사람들의 초안은? 말 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말인데 글쓰기를 배우는 건, 정확하게는 '문장 쓰기'를 배우는 건 고쳐쓰기를 배우는 것이다. 그럼 몇 번이나 고쳐써야 하냐고? 버나드 쇼의 말을 참고하기 바란다. 그렇게 하고 나서도 끊임없이 고쳐 쓸 것이 보일 것이다.

나의 경우 고쳐쓰기가 습관화 되어 있다보니 초안 쓰기에서부터 고쳐쓰기가 혼재하고, 페이스북 인스타 같은 간단한 문장도 엄청 고치고, 공유하고 또 꼬치고, 다시 읽고 고친다. 부작용이라면 다른 사람의 sns를 보면서도 맘 속으로 고쳐쓰기를 시전한다. 아침마다 페이스북이 보여주는 몇년 전 피드를 보며 고쳐쓰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를 때도 많다.

 

정리하자면

첫문장은 사라질 것이다.

초안은 쓰레기로 여길 것.

글쓰기를 시작했다면? 고쳐쓰기의 블랙홀에 입장한 것을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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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버나드쇼 이야기가 있는 

단문쓰기 연습 영상 

https://youtu.be/TO7orspMDZ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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